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니키포로스 1세 (문단 편집) == 죽음 == [[파일:krum-skull-cap.jpg]] 하지만 811년 7월 24일, 도망가는 불가르족을 추격하여 수도 플리스카 근처의 좁은 협곡으로 들어갔다가[* 그래서 이 황제가 죽은 전투명이 플리스카 전투이다.(Battle of Plisca)] 그만 함정에 빠져서 갇혀버리고 말았다. 유리한 고지를 장악한 불가르족은 황제가 이끄는 군대를 포위하여 맹공격을 가했고 결국 동로마군은 완전히 괴멸당했다. 황제도 이 전투에서 전사하였으며 시신은 불가르족들이 수습하여 참수하였고 몸 부분은 승전의 상징으로 전시되었다가 버려졌다. 그의 두개골은 [[은]]으로 도금하여 크룸이 한평생 술잔으로 사용하였다(중국 춘추전국시대 [[조양자(춘추시대)|조양자]]가 라이벌 [[지양자|지백]]을 죽이고 한 일과 비슷하다). ~~[[스키타이]]??~~ [[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]]에서 전사한 [[발렌스]] 이후 두 번째로 전투에서 전사한 동방제국의 황제로 기록되었으며 최후도 비참했다. 아들 스타우라키오스가 그 뒤를 이어 제위를 계승하였으나, 그 역시 이 전투에서 척수가 끊어지는 중상을 입은 상태로 도망쳐 간신히 목숨만 건진 상태였고 당연히 제대로 황제직을 수행할 수 없었다. 그는 3개월 만에 죽었는데 차기 황제로 황후 테오파노를 임명하려 했으나, 궁정에서는 스타우라키오스의 매형[* 니키포로스 1세의 사위이다.]인 [[미하일 1세 랑가베스|미하일 1세]]를 황제로 추대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